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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족보(族譜)의 의의와 유래

가. 족보(族譜)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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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族譜)(보첩(譜牒)이라고도 함)는 한 종족 혈통의 가계보(家系譜)로서 부계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식으로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나타낸 책으로 동일 혈족의 원류를 밝혀 조상을 숭배하고 혈족의 단결을 도모하며 후손으로 하여금 화목의 미풍을 이루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성족 파벌과 문중 가승을 분명히 하며 항렬 존비와 관련 적서등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족보는 역사와 관련을 맺어 역사 속에 명맥을 한 가문에 받아들여 혈족을 미화하고 있으나 허위나 날조를 금하고 있으니 이는 후손에게 공정한 정도를 교훈시키려 는 의도라 할 것이요. 상대에서 기록해 놓은 내용을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지 않고는 추록해서는 안되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한 가문의 역사가 어떤 특정 개인의 의사에 의한 임의 날조됨을 금하려는 것이요. 그대로의 역사성을 유지 존속시키려는데 있는 것이다

나. 보첩(譜牒)의 유래

보첩은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왕연표(帝王年表: 왕실의 계통)를 기술한 것이었으며, 조상의 관력과 혼인관계등으로 우족과 관족을 구별하려는 데서 시작되어 발전하여 내려오다가 개인적으로 보첩을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설치하여 응시생의 내력과 그 선대(先 代)의 업적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된다. 송대에 와서 한 혈족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게 되었고 전 가족을 수록하게 되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3소- 소 순, 소 식, 소 철 - 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편찬의 표본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毅宗)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그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대부의 집에서는 가승(家乘)이 전해 내려왔는데, 체계적으로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 7년(成宗 7 : 1476)에 발간된 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이고, 지금과 같이 혈족(血族)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 유씨보 (文化柳氏譜)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 각 권문 세가에서 서둘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여 많은 족보가 이를 전후하여 약 100년사이에 이루어져 지금까지 전해온다.

2. 족보(보첩)의 현황

가. 우리나라의 족보 현황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가장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따라서 우리의 족보를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실정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열람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세대가 자라나면서 한문으로 된 족보가 읽혀지기 어렵게 되자, 각 가문에서는 족보의 한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며, 아울러 간지를 서기로 환산하거나 사진의 컬러화와 체제의 단순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여러 뜻있는 학자들이 학회를 결성하여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한글세대에 맞는 현대 감각으로 족보를 개편하여 모든 이들이 실용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 외국의 족보현황

  족보는 한국이나 동양의 일부국가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 이가 많은데, 사실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족보제도가 있다. 많은 나라들에 족보학회가 있으며, 족보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도서관이 있는 나라도 있다. 미국의 족보전문 도서관에는 마이크로 필름화가 되어 있으며 족보학회가 창립된지도 80년이 넘어 많은 학자들이 국제 회의를 통하여 족보에 대한 여러가지 세미나를 하고 있다. 특히 하버드 대학에서는 한국의 족보제도를 연구하기 위하여 한국의 족보들을 모두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다.

미국 유타주의 각 대학에서는 계보의 작성법을 각 학과에 편성해놓고 교과로 배우고 있으며 연구발표회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일본의 도쿄(동경)대학과 교토(경도)대학, 중국의 남경 도서관과 중국과학원, 북경도서관, 프랑스의 극동학원, 베트남의 국립도서관등에 동양의 족보가 보존되어 있다. 명칭에 있어서 중국에서는 종보(宗譜)라 하며, 상류 계층에만 족보가 보급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가보(家譜)라고 하며 각 가문마다 문장이 대대로 전해져서 특별한 예식이나 명절에는 예복,모자 등에 착용한다.

서구에서는 "Family Tree"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족보가 없는 민족 가운데는 잃어버린 조상을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의 민족주의 국가에서는 지난날의 잡혼에 의한 질의 저하를 막기 위해 혈통을 존중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 있어서 족보는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보첩(譜牒)의 종류

가.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始祖) 밑의 중시조(中始祖)마다 각각 다른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간에 종합 편찬된 족보   이다.  즉 본관은 각기 다르되, 시조가 같은 여러 종족이 함께 통합해서 만든 보책(譜冊)이다

나. 족보(族譜)
관향(貫鄕)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보첩으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家系)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보책  (譜冊)이다.

다. 세보(世譜)와  세지(世誌)
한 종파(宗派)이상의 동보(同譜)·합보(合譜)로 편찬되었거나, 어느 한 파속(派屬) 만이 수록되었을 경우이며,  이를  세지(世誌)라고 도 한다.

라. 파보(派譜)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속(派屬)만의 명·휘자(名·諱字 : 이름자)와 사적(事蹟)을 수록한 보책(譜冊)이다.

마.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편찬하되,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尊屬 :자기의 윗 대)과, 비속(卑屬 : 자기의 아랫 대)에 이르기까지 이름 자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 보첩 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바.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내는 도표(圖表)로서, 한 씨족 전   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수록된 것이다.

사. 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나 내용의 표현이 아니라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보첩을 말한다.

아.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集成)한 책으   로 족보의 사전(辭典)   구실을 하는 것이다

4. 보첩의 제반 용어 해설

가.  시조, 비조, 중시조  
시조란 제일 처음의 선조로서 제일 첫번째 조상이며 비조란 시조 이전의 선계 조상 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중시조란  시조 이하의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조상을, 모든 종중의 공론에 따라 정하여 추존한 사람이다.

나.  선계와  세계
선계란 시조 이전 또는 중시조 이전의 조상을 일컫는 말이며, 세계란 대대로 이어가 는 계통의 체계를 말한다.

다.  세(世)와  대(代)
시조를 1세로 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라 하고, 자신을 빼고 아버지를 1대로 하여 올라가며 계산하는 것을 대라 한다.   또한 자기의 조상을 몇대조 할아버지라고 하고, 자신은 시조 또는 어느 조상으로부터 몇세손 이라고 한다.

라.  이름자
요즘은 이름을 하나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여러 가지로 불렀는데,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을 아명, 우리가 익히 아는 자는 20세   가 되면 요즘의 성년식과 같이 관례를 행하는데 여기에는 식을 주례하는 주례자가 있어 예식을 거행함과 함께 지어준 것이   다. 또한 가문의 항렬자에 따라 족보에 오르는 항명과 특별히 따로 부르는 별호가 있다. 우리는 보통 윗 어른의 이름자를 말   할 때 결례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살아 계신 분에 대하여는 함자라 하고,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휘자라 한다.

마.  항렬과  항렬자
항렬이란 같은 혈족사이에 세계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문중 율법이며, 항렬자란 이름자 중에 한글자를 공통적으로 사용   하여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돌림자라고도 한다. 선조들은 자손들의 항렬자와 배합법까지를 미리 정해 놓   아 후손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관례로 만들어 놓았다. 

바.  후사와  양자
후사란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계대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만약 계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무후",  양자로  출계하였   을 경우에는 "출후",  서얼로서 입적 되었을 경우에는 "승적", 그리고 후사가 확실치 않아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후부전" 이라   칭한다.  

사.  묘소
묘소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자만을 기록하고 좌향과 석물 등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표시하며, 합장   의 여부등도 기록한다. 좌향은 대개 ( )좌로 표시하는데 자좌라 하면 자는 정북을 나타내며 북을 등졌다는 뜻으로 정남을 가   리키 는 것이다

5. 시호록(諡號錄), 시법(諡法)이란?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중에서 정二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시호(諡號)를 주었는데,  뒤에는 범위가 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절신(節臣) 등은 정二품이 못되어도 시호(諡號)를 주었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 이의 행장(行狀)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禮曹)에 제출   하면 예조(禮曹)에서 이를 심의한 뒤  봉상사(奉常寺)를 거쳐 홍무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諡號)를 정하게 된다.
시호(諡號)를 정하는 법으로는 『주공시법(周公諡法)』이니 『춘추시법(春秋諡法)』이니 하여 中國古代 이래의 시법(諡法)이  많이 적용되었던 듯하다.

[시호(諡號)에 사용된 글자는]

  문(文)·충(忠)·정(貞)·공(恭)·양(襄)·정(靖)·효(孝)·장(莊)·안(安)·
  경(景)·익(翼)·무(武)·경(敬)  등, 120 자인데,  

  한자  한자마다  정의(定義)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行蹟)에  알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두자(字)로 만들고  시호(諡號)아래 『   공(公)』자를 붙이어 부른다.

6. 족보(族譜) 보는 법

 족보 보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족보를 보려면 우선 '나(자신)'이 어느 파에 속해 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파를 알지 못한다면 조상이 어느 지역에 살았고, 그 지방에 어떤파가 살았던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시조로부터 몇 세(世)인지를 알아야 한다. 족보로는 가로로 단을 나누어서 같은 세대에 속하는 혈손을 같은 단에 가로로 배열하였으므로 자기 세의 단만 보면 된다. 세수를 모른다면 항렬자로 세수를 헤아려야 한다.

셋째

항렬자와 족보에 기록된 이름(譜名)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나 호적에 올린 이름에는 항렬자를 넣지 않았더라도 족보에 실을 때는 반드시 항렬자를 넣은 이름을 기재했으므로 이를 알아야 한다.

 위의 세가지는 족보를 보는 기본 요건이므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족 보 보 기

 

 다음에 족보의 한 쪽을 예로 들었으니 보면서 좀 더 자세하게 족보 보는 방법을 보기로 한다.

1

파의 이름이다.  파의 명칭은 대부분 파조(派祖)의  관작명, 시호, 아호(雅號)등을 따서 붙이게 마련이다.  이 예시에서는 파조 자전(子詮)이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사과공파'라 한 것이다.  이 파를 찾으려면 족보 계보도(系譜圖)외에 세계도(世系圖)를 보아야 한다.  세계도에는 대략 분파 계도를 그려놓고 무슨 파는 몇 권 몇 쪽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이 표시를 과거에는 천자문(千字文)의 순서대로  한 장에 한 장씩 붙였는데 요즘은 대개 숫자 순으로 쓰고 있다.
 

2

열(悅)을 기두(起頭)라 한다.  오른쪽의 작은 글씨는 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표시 한 것이다. 그 옆에  큰 글씨로 쓰여져 있는 사첩(四疊)은 가로로 네 번 바뀌었다는 뜻이다.
 

3

18은 열의 상계, 즉 자전이 18쪽에 있다는 표시다.  몇 권이라는 표시가 따로 없는 것은 그 책의 18쪽이라는 뜻이다.
 

4

20세는 시조 또는 1세조로부터의 세수를 표시한 것이다.
 

5

보명(譜名) 또는 관명(冠名)이라 한다.
 

6

양자(養子)의 생부(生父)를 나타낸 것이다.
 

7

누구에게 양자를 갔다는 표시이다. 이를 출계(出系)라고 한다.
 

8

자(字)와 관직을 기록한 것이다.  호(號)가 있을 경우는 자 다음에 호를 기록하고 다음에 관직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9

출생 연대이다. 요즘은 서기와 간지(干支)를 함께 쓰고 있다.
 

10

생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11

사망한 연대와 사망한 나이이다.
 

12

배우자의 성, 본관, 부친, 조부와 증조의 이름 및 관직이다.
 

13

배우자의 외조부의 성과 본관, 이름, 맨 끝으로 묘소의 소재지이다.
 

14

교(嶠)의 하계(下界),  즉 아들 이하는 1294쪽에 나타나 있다는 표시이다.  이럴 경우 1294쪽을 보면 '교'가 기두로 되어 계속된다.
 

15

둘째 아들이다.
 

16

셋째 아들이다.
 

17

출가한 딸의 배우자,  즉 사위의 성명이다.
 

18

사위의 본관과 사위의 아들,  즉 외손자의 이름이다.

 

7. 유적의 명칭(名稱)


 
 [(殿)]
  궁궐,향교,절 등과 같이 여러 채의 건물이 있을 때,그 중에서 가장 큰 집을 일컫는 말이다.
  
  예) 대성전(大成殿), 대웅전(大雄殿)

 [(廟)]
  세상에 공적을 남기고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예) 종묘(宗廟), 문묘(文廟)

 [사우(祠宇)]
  학문과 덕행(德行)이나 무공(武功)을 세운 인물의 위업(偉業)과 그 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건   물로 신주(神主)를 모신   다.
  옛날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3년상을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5대손에 이르러서 매주(埋主)하고 산   소에서 시제(時祭)를   지냈다.

 [부조묘(不조廟)·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명예로운 조상으로서 그 위패(位牌)를 옮기지 아니하고 대대로 모시는 건물이다. 교묘(郊廟) 또는 조묘   (조廟)라고도 한다.

 [별묘(別廟)]
  묘와는 달리 특별하게 따로 지은 사당(祠堂)을 말한다.

 [영당(影堂)]
  조상의 영정(影幀: 肖像)을 모시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堂)]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특별히 지은 집 또는 공청(公廳)을 뜻한다.
  
  예) 명륜당(明倫堂)

 [(院)]
  거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건물과 정원을 뜻한다.

 [정사(精舍)]
  학문을 쌓고 수양하거나 또는 풍월(風月)을 즐기기 위하여 세운 집을 말한다.

 [정문(旌門)·정려(旌閭)]
  효행(孝行), 충절(忠節), 정절(貞節)이 뛰어난 사람의 그 뜻을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기 위하여   국가 또는 사회에서   표창하는   문(門)이다.

 [유허비(遺墟碑)]
  선조(先祖)들이 살았던 곳 또는 그 위엄을 기리던 곳에 자손이나 친지들이 그 터를 보존하기 위하여   세우는 비(碑)이다.

 [신도비(神道碑)]
  나라에 크게 공헌하며 거룩하게 산 사람의 일생 동안의 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해 세   우는 비(碑)이다.

 [재실(齋室)]
  조상의 제사를 경건하게 받들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단정히하고 제수를 장만하기 위하여 특별히 지   어 놓은 집.

 [단(壇)]
  묘소를 실전(失傳)하였거나 아예 묘소가 없는 사람의 체백(體魄)을 모신 것처럼 묘소나 비를 세워놓   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헌(軒)]
  마루 또는 공청(公廳)을 말 한다.
  
  예) 오죽헌(烏竹軒)

 [루(樓)와 각(閣)]
  높다랗게 지은 건물이다.
  
  예) 광한루, 촉석루

 [대(臺)]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관망이 좋은 곳에 세워진 건물 또는 축대이다.   
  
  예) 해운대, 경포대

8. 가족(家族)과 가정(家庭)예절


가. 가정예절의 의미
  가정은 祖上으로부터 나에게로 이어졌고 나로부터 子孫에게로 물려지는 영원한 것이다.
  가정은 나라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이루는 사   회생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예절에는 기본 예절과 개인 예절등 여러 관점들이 있으나, 예절의 모체는 역시 가정 예절인 것이다.  

나. 가족의 범위
  가정예절은 가족간의 예절이기 때문에 먼저 가족의 범위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가족(家族)은 법률적으로 한 호적에 실려있는 구성원이며 같은 혈족이며 한 핏줄인 모든 친척을 의미   하기도 한다.

  (1) 호적법상의 가족
   현행 호적법상으로 볼 때 가족은 큰아들인 아버지와 어머니,자기와 그리고 혼인하지 않은 아버지의 동생과 누이, 그리고  자기의 형제    자매이다.

  (2) 근친·당내간·유복지친
   우리가 흔히 근친이라 말하는 집안은 고조할아버지 이하의 조상을 직계 할아버지로 하는 8촌이내의 모든 사람이다.
   이 근친을 한 집에서 산다는 의미로 당내간(堂內間) 이라고 하고, 죽으면 상복을 입는 친척이라는 뜻으로 유복지친(有服之親)이라 고    도 한다.

  (3) 핏줄·혈족(血族)·동성동본일가
   남자조상이 같은 집안을 핏줄 또는 혈족이라 하고,흔히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일가(一家) 라고도 한    다.

  (4) 살붙이·척족(戚族)
   척족이란 성(姓)이 다른 친족을 말한다.

     (가) 외척(外戚)
      직계 여자조상(할머니,어머니)의 친정가족으로 외가(外家)의 친족(親族)이다.
     
    (나) 내척(內戚)
      직계 존속남자의 자매(고모,대고모)나 자기의 자매(누이) 또는 딸이나 손녀가 시집 가서 그 배우자 와 낳은 자손을 말한다. 넓게 말       할 때는 혈족인 여자가 시집 가서 그 배우자와 낳은 자손을 말한다.
     (다) 인척(姻戚)
      혼인으로 인해서 집안 친족(親族)이 된 사람이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아내의 친정가족,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편의 직계가 아닌       친족을 말한다.

다. 촌수(寸數)와  친척관계
  친척간에 멀고 가까운 친소(親疏)를 말하려면 촌수(寸數)로 말한다.
  그리고 상대와 자기와의 관계를 말할 때는 친척관계로 말한다.

8. 촌수(寸數) 따지는 법

 * 직계 가족과의 촌수(寸數)는 자기와 대상까지의 대수(代數)가 촌수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은 1대(代)니까 1촌(寸)이고, 할아버지직     계인 경우 무조건 1촌이 되는 것입니다.

   촌수를 따지는 것은 직계존ㆍ비속간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라, 방계 친족간을 따지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직계 존ㆍ비속을 촌수로 메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 방계 가족과의 촌수(寸數)는 자기와 대상이 어떤 조상에게서 갈렸는지를 먼저 알고 자기와 그 조상의 대수에 그 조상과 대상의 대    수(代數)를 합해서 촌수(寸數)로 한다.
   즉 형제자매는 아버지에게서 갈렸는데, 자기와 아버지는 1대(代)이고, 아버지와 형제자매는 1대니 까 합해서 2촌이고, 백숙부와 자   기는 할아버지에게서 갈렸는데 할아버지와 백숙부는 1대(代)이고,할아버지와 자기는 2대(代)니까 합해서 3촌이 되는 것이다.

 


남자 (直系)

                     

1촌

                   

현조부
(玄祖父)

                   

|

                   

1촌

 


6촌

고조부
(高祖父)

 

종고조
(從高祖)

|

 

|

1촌

 


5촌

 

7촌

증조부
(曾祖父)

 

종증조
(從曾祖)

 

재종증조
(再從曾祖)

|

 

|

 

|

1촌

 


4촌

 

6촌

 

8촌

조부
(祖父)

 

종조
(從祖)

 

재종조
(再從祖)

 

3종조
(三從祖)

|

 

|

 

|

 

|

1촌

 


3촌

 

5촌

 

7촌

 

9촌


(父)

 

백숙부
(伯叔父)

 

종백숙부
(從伯叔父)

 

재종백숙부
(再從伯叔父)

 

3종백숙부
(三從伯叔父)

|

 

|

 

|

 

|

 

|

0촌

 


2촌

 

4촌

 

6촌

 

8촌

 

10촌


(己)

 

형,제
(兄,弟)

 

종형제
(從兄弟)

 

재종형제
(再從兄弟)

 

3종형제
(三從兄弟)

 

4종형제
(四從兄弟)

|

 

|

 

|

 

|

 

|

 

|

1촌

 

3촌

 

5촌

 

7촌

 

9촌

 

11촌

아들
(子)

 


(姪)

 

종질
(從姪)

 

재종질
(再從姪)

 

3종질
(三從姪)

 

4종질
(四從姪)

|

 

|

 

|

 

|

 

|

   

1촌

 

4촌

 

6촌

 

8촌

 

10촌

   

손자
(孫)

 

종손
(從孫)

 

재종손
(從孫)

 

3종손
(三從孫)

 

4종손
(四從孫)

   


여자 (內從間, 고모계)

                 

1촌

               

고조
(高祖)

               

|

               

1촌

 


5촌

증조
(曾祖)

 

증대고모
(曾大姑母)

|

 

|

1촌

 


4촌

 

6촌


(祖)

 

대고모
(大姑母)

 

내재종조
(內再從祖)

|

 

|

 

|

1촌

 


3촌

 

5촌

 

7촌


(父)

 

고모
(姑母)

 

내종숙
(內從叔)

 

내재종숙
(內再從叔)

|

 

|

 

|

 

|

0촌

 


2촌

 

4촌

 

6촌

 

8촌


(己)

 

자매
(姉妹)

 

내종형제
(內從兄弟)

 

내재종형제
(內再從兄弟)

 

내3종형제
(內三從兄弟)

|

 

|

 

|

 

|

 

|

1촌

 

3촌

 

5촌

 

7촌

 

9촌


(女)

 

생질
(甥姪)

 

내종질
(內從姪)

 

내재종질
(內再從姪)

 

내3종질
(內三從姪)

|

 

|

 

|

 

|

 

|

1촌

 

4촌

 

6촌

 

8촌

 

10촌

손녀
(孫女)

 

이손
(離孫)

 

내재종손
(內再從孫)

 

내3종손
(內三從孫)

 

내4종손
(內四從孫)

   

외가 (外從間)

                 
 

1촌

           
 

외고조
(外高祖)

           
 

|

           
 

1촌

 


5촌

 

외증조
(外曾祖)

 

외종증조
(外從曾祖)

 

|

 

|

 

1촌

 


4촌

 

6촌

 

외조
(外祖)

 

외종조
(外從祖)

 

외재종조
(外再從祖)

 

|

 

|

 

|

3촌

 


1촌

 


3촌

 

5촌

 

7촌

이모
(姨母)

 


(母)

 

외숙
(外叔)

 

외종숙
(外從叔)

 

외재종숙
(外再從叔)

|

 

|

 

|

 

|

 

|

4촌

 

0촌

 

4촌

 

6촌

 

8촌

이종형제
(姨母)

 


(己)

 

외종형제
(外從兄弟)

 

외재종형제
(外再從兄弟)

 

외3종형제
(外三從兄弟)

|

 

|

 

|

 

|

5촌

 

5촌

 

7촌

 

9촌

이종질
(姨從姪)

 

외종질
(外從姪)

 

외재종질
(外再從姪)

 

외3종질
(外三從姪)

 


 

 

 

1. 성씨(姓氏)의 의의

성씨란 혈통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부호로서 혈연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발전하여 복잡하게 되어 감에 따라 서로 간의 가통을 호칭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할 수 있다.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우리민족은  어느 누구나 부계를 중심으로 한 각자의 성씨를 갖고 있으며, 각 성씨 별로 씨족의 역사를 갖고  서로 융화하며 협동, 발전하여 왔다.   즉 성명(姓名)에 대해 알아 보면 성(姓)과 본관(本貫)은 가문을 , 명(名)은 가문과 대수(代數)를 나타내는 항렬(行列)과 개인을 구분하는 자(字)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 구분은 물론 가문의 세대까지 나타나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독특한 체계를 갖고 변천하여 왔다.  특히, 조상숭배사상과 애족사상이 강한 우리들은 성씨를 통해 선조들의 유현한 여운을 느끼고, 면면히 내려오는 가통의 맥락을 더듬으며 조상의 얼과 체취를 느끼는 동시에 가문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씨의 성장과정은 문명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역할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2.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

  우리 나라 성(姓)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유입한 뒤인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 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강(姜)씨라고,
  -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姬)씨로,
  - 순(舜)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었으므로 성을 요(姚)씨로 한 것은 이것을 실증한다.

 <삼국시대>

  고구려 - 우리 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건국 시조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高)씨라고 하였으며, 주몽은 충신인들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를 사성(賜姓)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중국 한서에 나타나 있는 인명의 기록을 보면,  주몽은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나,  장수왕때에 장수왕 이름을 고연(高璉)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고구려 왕실의 성을 고(高)씨로 기록 하였으며,  장수왕이 사신으로 보낸 고익, 마루, 손참구, 동마 등의 이름에도 모두 성을 사용하였다.

  백제 - 우리 나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으나  중국의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는 왕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기록 되어 있으며,  진서, 송서 등의 기록에는 근초고왕(13대) 부터 위덕왕(27대)까지는 여(餘)씨로 표시하다가 무왕(29대)부터 부여(扶餘)씨로 기록하였다.

  신라 - 박(朴), 석(昔), 김(金) 삼성(蔘姓)의 전설이 전해 오며,  유리왕 9년(32)에 육부(六部)의 촌장에게 각각 이(李), 정(鄭), 손(孫), 최(崔) , 배(裵), 설(薛)씨의 성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북제서"에는 진흥왕(540~576)을 금진흥(金眞興)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김(金)씨라는 성을 사용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삼국은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성을 쓴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 7세기 이전 건립된 신라 진흥왕의  네곳의 순수비,  
   - 신라 진지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술오작비,
   - 신라 진평왕시대에 건립된 경주 남산의 신성비 등의


비문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볼때 인명에 성을 사용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소속부명(촌명)과 이름만 쓴 것을 보면  우리 선조는 성보다 본(촌명)을 먼저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예를 들어 추정해보면, 고구려는 장수왕시대(413~490)부터,  백제는 근초고왕시대(346~375)부터, 신라는 진흥왕시대(540~576)부터 성을 쓴 것으로 기록에서 추정한다.

  삼국 시대의 성은
  고구려 : 고(高), 을(乙), 예(芮), 송(松), 목(穆), 간, 주(舟), 마(馬), 손(孫), 동(董), 채, 연(淵),
               명림(明臨), 을지(乙支)
백 제 : 여, 사, 연, 협, 해, 진, 국, 목, 국 등의 팔족과 왕, 장, 사마, 수미, 고이, 흑치
신 라 : 박, 석, 김 3성과  이, 최, 정, 손, 배, 설의 육부의 6성과  장, 비 등이 있고, 왕실의 성인 고(高),여(餘),김(金)    을 쓴 사람이 가장 많았다.

  삼국사기에도 성을 쓴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주로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와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였으며,  일반민중은 신라 말기까지 성을 쓰지 않았다.

 <고려시대>

  고려의 태조 왕건이  개국 공신들과  지방 토호세력들을  통합 관장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현 개편작업과 함께  성을 하사하면서  우리나라 성씨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와 같이 고려 초기부터 귀족 관료들은 거의 성을 쓰게 되었으나,  고려 문종9년(1055)에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급제할 수 없다는 법령(法令)을 내린 것을 보면  이때까지도 성을 쓰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법령으로 우리나라의 성이 보편화되어  일반민중이 성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문종 이후의 사람을 시조로 하는 성씨가 많아졌다.

 <조선시대, 현대>

  조선초기 성은 양민에게 까지도 보편화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조선 후기까지도 성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어느 누구라도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기회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동(洞)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성씨의 종류가 더욱 늘어났다.  따라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가 많아졌다.

3. 성씨(姓氏)의 성장 과정

 성씨의 수와  종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역사의 흥망성쇠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의 수를 살펴 보면  세종실록지리지에는 256성이,
1486년(성종)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277성,  영조(21대)에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1908년(고종)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496성(숫자가 많은 것은 고문헌에 있는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으로 되어 있으나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250성,  1960년 국세조사에는 258성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인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74개의 성씨로 보고 되었다.

  이와같이 시대별 또는 자료별로 차이가 큰 것은  대개 실제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옛 문헌에 산재해 있는 것을 조사한 것이기 때문이며,  가구주와 호적별의 조사 차이로 나타났다. 1975년도 인구조사에 의한 성씨분포도를 살펴보면, 김씨가 전체인구의 21.9%, 이 씨가 14.9%, 박씨가 8.5%, 최씨가 4.8%로 4대성이 총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순위 20위안에 드는 성이 80%를 차지하고 35여개 성이 90%, 90여개 성이 전체의 99%를 차지하여,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274개 성중에 90여 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180여개 성은 총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데 심지어는 1가구뿐인 성씨도 있다.
  일제식민 통치하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의 일환으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라며 1939년에 시행한 창씨개명은 1945년 해방과 1946년 10월 23 일 미군정이 공포한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에 따라  이름을 다시 찾을 때 까지  우리나라 성씨 역사의 가장 큰 수난기였다.  이후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의 귀화 등으로 새로운 성씨와 본관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4. 외국의 성씨 제도

  외국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미국,영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브라질 등도 원칙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법률로 정해진 것이 아니며 여자는 결혼전의 성을 그대로 가질 수도 있고 남편의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통례이나,  법률로는 부부가 서로 의논하여 어느 한쪽의 성을 사용하거나  각자의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부부는 각자의 성명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아내는 자기의 성 위에 남편의 성을 합하여 사용하는 복성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의 성은 두 글자 성씨가 된다.

   또한 지구상에는 성이 없는 국가도 많다.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이 한 예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데  다만 개인적으로 필요하거나 취미로 이름 위에 이것 저것 덧붙여 사용한다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이름 위에 '우'나 '몽'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우 와 '몽'이 우리나라의 김씨나 이씨  만큼 많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자는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붙이는 경칭이며 '몽'자는 미혼의 젊은 이에게 붙이는 것으로 영어의 미스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성씨는 매우 복잡하고 그 숫자로도 13만 2천여 성씨로 세계에서 제일 많은 민족 중의 하나다. 일본의 성씨는 두 글자 성씨가 제일 많고 한 글자나 세 글자 성씨도 많다.

韓國의  姓氏  본관(本貫) 보기


가賈

간簡

 

갈葛

감甘

 

강姜

강康

강强

강彊

 

강剛

개介

 

견堅

견甄

경慶

경景

계桂

고高

곡曲

공孔

공公

곽郭

구具

구丘

 

국國

국菊

군君

궁弓

권權

근斤

금琴

기奇

기箕

길吉

김金

나羅

남궁南宮

남南

낭浪

 

내乃

내奈

노盧

노魯

 

노路

뇌雷

뇌賴

단段

단端

당唐

대大

도都

도陶

도道

독고獨孤

돈頓

돈敦

동董

동방東方

두杜

 

류柳

마馬

마麻

만萬

매梅

맹孟

명明

모牟

모毛

목睦

 

묵墨

문文

미米

민閔

 

박朴

반潘

반班

방方

방房

방龐

방邦

배裵

 

백白

범范

범凡

변卞

복卜

봉奉

봉鳳

부夫

비丕

빈彬

빈賓

사史

사謝

 

사공司空

사씨舍氏

삼森

상尙

서徐

서西

서문西門

석石

석昔

선宣

선우鮮于

설薛

섭葉

성成

성星

 

소蘇

소邵

손孫

송宋

송松

 

수水

수洙

순舜

순淳

순荀

순順

승承

승昇

시施

시柴

 

신申

신辛

신愼

심沈

 

아阿

안安

애艾

야夜

양梁

양楊

양樑

양襄

어魚

엄嚴

여呂

여余

여汝

연延

연燕

연連

염廉

염閻

영影

영永

예芮

오吳

오伍

 

옥玉

온溫

옹邕

옹雍

왕王

요姚

용龍

우禹

우于

 

운芸

운雲

원元

원袁

위韋

위魏

유劉

유兪

유庾

 

육陸

윤尹

은殷

은恩

음陰

응應

 

이李

이伊

이異

인印

임林

임任

자慈

장張

장蔣

장章

장莊

전全

전田

전錢

점占

정鄭

정丁

정程

제諸

제갈諸葛

조曺

조趙

 

종宗

종種

좌左

주朱

주周

 

준俊

지池

지智

진陳

진秦

진晋

진眞

차車

창倉

창昌

 

채蔡

채菜

채采

천千

천天

초肖

초楚

최崔

추秋

추鄒

 

탁卓

탄彈

태太

판判

팽彭

편扁

편片

평平

포包

표表

풍馮

피皮

필弼

 

하河

하夏

한韓

한漢

함咸

 

해海

허許

현玄

형邢

호扈

호胡

홍洪

화化

후后

 

황黃

 

황보皇甫

황보黃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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