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상례 제례에 대하여

 

맞선

혼례 절차

약혼

납폐(納幣) 또는 봉채

약혼에 관한 생활 법률

택일

결혼식장

예식 식순

교회에서의 결혼 식순

불교 식 결혼 식순

현 구고(見舅姑) (일명 폐백)

在來式 婚禮 재래식 혼례

 

 

 

 

 혼례(婚禮)의 모든 것

 

혼례는 인생의 4대의례 라는 冠,婚,喪,祭, 중에서도 가장 경축스럽고 중대한 대사이다. 二姓之合 은 만복의 근원이란 말이 있듯이 타인과 인연이 있어서 평생을 같이할 굳은 約束을 하는 것이 결혼식이다.

결혼식을 통해서 완전한 成人이 되며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 기약되므로 결혼식은 형식이나 虛禮虛飾 보다는 서로의 굳은 약속을 다짐하고 동시에 웃어른과 사회에 대해서 두 사람의 공동 생활을 公表하는 예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六禮라는 것이 있어서 결혼식의 節次가 까다롭고 복잡하였지만 지금은 대개 연애나 맞선 교제의 課程을 거처 결혼식에 이르기 때문에 충분히 상대방을 알 수 있고 또 그만큼 결혼에 대해서 당사자의 책임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맞선은커녕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신랑 신부는 아랑곳없는 어른들의 중심이 된 결혼 이였다.

혼인은 당사자간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률상으로 남자 26세 여자 23세가 넘으면 戶主의 승낙 없이도 결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의 허락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되도록 이면 부모의 승낙을 받는 것이 도리인 것이다.

 

혼례절차

1.맞선

나는 연애 결혼이 아니면 절 때 안 해 하는 연애 결혼 지상론 자가 요즘은 많아졌다. 이런 분들은 혼담이 나오면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보기 도전에 반대를 하고 나선다.

그러나 지금 맞선은 옛날과 다르다.

옛날에는 본인의 의사가 전혀 무시되었지만 요즘 맞선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고 있다.

현대의 맞선은 생활 경험이 풍부한 제삼자의 소개로 결혼을 전제로 하는 교제 상대를 널리 구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맞선을 보고 교제를 해보다가 그 사람과 평생을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제로서만 끝나고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된다.그래서 생각 하기에 따라서는 맹목적인 연애 결혼보다도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맞선의 장점은 상대방의 여러 조건을 이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한편연애는 극히 감정적인 면에 치우쳐 오류를 범하기가 쉽다.

사진이나 서류(신원조사) 등을 교환한 다음 서로의 뜻이 어긋나지 않으면 중매자는 본인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 준다.

;장소는 당사자들이 마음 편히 애기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요즘 다방이나 제과점 같은 곳이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드나드는 사람이 많고 소란해서 부적당하다. 만일 중매인이 아담하고 조용한 응접실을 가졌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리고 맞선보는 시간은 식사시간을 피한 오후가 좋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식사비용이 많이 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며 식사를 하게 되면 테이블 매너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당사자들의 마음이 더욱 굳어지고 상대방을 관찰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맞선은 식사보다 차를 마시는 정도의 시간과 장소를 택해야 한다.

복장은 자연스럽게 평소에 입는 옷 중에 자기에게 잘 어울리고 남들이 좋다고 하던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이 제일 무난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스포티하고 유행에 앞장선 옷들은 삼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맞선의 대화는 공통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서로 아는 분의 이야기라든가 양쪽이 함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내야 한다.

대화의 요령은 화술보다도 듣는 기술이 필요하다. 요령은 상대방에게 질문을 해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때때로 질문을 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맞선 사진이나 신원 조사는 결국 간접적인 것이다. 직접 만나 보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고 쳐다보기도 싫다든지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진다는 경우가 있다. 제삼자가 보아서 알맞은 한 쌍으로 보이고 학력 취미 등으로 보아 천상 배필이라고 생각되는데도 본인끼리는 싫다는 경우가 있다. 그야말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간단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흡족치 못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자기 자신도 여러 번 반성해 보고 제삼자의 판단에도 귀를 기울여서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2.약혼

약혼은 두 사람이 결혼을 전제로 해서 교제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함께 추진해 나가는 시기다.

옛날에는 사주가 교환되면 곧 결혼을 하기 때문에 약혼기간이 극히 짧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너무 길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몰라도 2~5개월 정도가 적당하겠다.

약혼식 당일의 비용은 신부측에서 전담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상대방의 부담을 고려하여 신랑측에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 약혼할 때 준비해야 할 것

1.호적 등본2. 건강 진단서 3.약혼 서식 4.도장 두장을 작성해서 서로 1장식 가지고 잘 보관한다.

※ 약혼 중의 몸가짐

1.자주 만난다 해도 어떠한 뜻을 가지고 만나도록 노력한다.

2.상대방의 집을 너무 자주 드나들지 말자.

3.너무 절도를 넘지 않을 정도로 자기 개성을 발휘하라.

4.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5.약속 시간을 잘 지켜라.

6.상대편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존심을 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7.선물은 함부로 하지 말고 잘 생각해서 한다.

 

약혼에 관한 생활 법률

1.남자 18세 여자 16세가 되어야 약혼할 수 있다.

2.부모가 없는 미성년자는 후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3.부모 또는 후견인의 동의 없는 금치산자의 약혼은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다

4.약혼했다고 혼인을 강요할 수는 없다.

5.형법상 형별로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가있는데 자격정지 이상 받은 면 파혼 사유가 된다.

6.금치산 한정치산 선고를 받으면 파혼 사유가 되나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7.성병은 파혼 사유가 된다.

8.정당한 이유 없이 파혼하려면 손해 배상을 책임져야 한다.

9.약혼자가 타인과 간음했을 때 파혼할 수 있다.

10.2년 이상 생사불명 일 때 파혼할 수 있다.

11.이유 없이 혼인을 미룰 때도 파혼할 수 있다.

12.속아서 약혼한 경우 파혼할 수 있으나 약혼 후 동거한 사실에 대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없다.

13.파혼 사유를 만든 당사자는 위자료의 책임을 져야 한다.

14.정당한 이유 없이 파혼 당하면 패물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며 위자료는 청구할 수 있다.

 

3.택일

결혼 날짜를 결정할 때는 당사자간의 직업에 따른 사정이나 기타의 여건을 참작하여 서로합의 하여 결정하는 게 좋다.

먼저 계절은 어느 때가 좋은가를 결정하고 날짜는 신부측에 우선권을 주되 신랑측의 형편을 고려해서 하며 친척이나 내빈의 형편을 고려한다.

 

4.납폐(納幣) 또는 봉채

납폐라 함은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폐백을 말하며 옛날에는 함을 보냈으나 요즈음은 가방이나 트렁크를 이용한다.

함에 넣는 옷감은 청치마 홍치마 등 제한이 없으나 형편에 따라서 준비하면 된다. 이밖에 결혼식이 끝난 후 신부가 갈아입을 옷으로 노랑저고리와 분홍 치마를 준비하는데 여유가 있으면 구두 스타킹등을 준비해도 좋다. 신부측에서 양복을 해주면 신랑측에서도 신부 옷을 장만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혼식장

요즘의 결혼식은 대부분 예식장에서 올리고 있다.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과 부처님 앞에서 올리는 불교식도 있으며 최근에는 야외에서 하는 사람 비행기 속에서 하는 사람 심지어는 서울역 광장에서 하는 사람도 있고 물 속 해변 산꼭대기 바야흐로 결혼식도 아이디어 시대 같은 인상을 주나지나치게 기이한 장소는 좋지 않다. 일생일대의 단 한번 올리는 것인데 신성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해야 할 것이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양가의 상의하에 결혼식장이 예식장으로 정해지면 먼저 다음과 같은 것을 고려 해야 한다.

           1.식장 비용을 생각할 것

           2.되도록 빨리 예약을 할 것

           3.예식에 참가할 손님을 예상하고 잡을 것

           4.손님이 찾아오기 싶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택할 것

           5.평소 존경하던 분이나 학창 시절의 은사 가운데서 주례를 부탁할 것

6.예식 식순

예식장에서의 결혼 식순

1.개식 2.신랑 입장 3.신부 입장 4.신랑 신부 맞절 5.신랑 신부 서약 6.예물 증정 7.성혼 선언문 낭독 8.주례사9. 양가 대표 인사 10.신랑 신부 인사11. 폐 식.

 

교회에서의 결혼 식순

1.신랑 신부 입장 2.예배 (찬송가, 성서 낭독, 기도) 3.성 약식 4.예물교환 5.목사 교훈6.선언7.기도 8.신랑 신부 퇴장

 

불교 식 결혼 식순

1.일동 착석 2.신랑 신부 입장 3.사혼 자(주지)입당 4.독경 5.경백 문 낭독(사 혼자) 6.신랑 신부 12.참석자 퇴석.

 

 

7.현 구고(見舅姑) (일명 폐백)

시부모님이 자리를 정하고 않으면 신랑집 가족은 좌우에 차례로 서고 수모가 준비한 폐백을 시부모에게 올린 후에 신부를 인도하여 시부모에게 제배를 시킨 후 술을 따라서 신부의 손을 거처 시부모님에게 올리면 시아버지는 대추를 한 두개 씹은 후 그 씨나 혹 은 대추 한 두개를 신부에게 던지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예물이나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보를 주기도 한다.(요즘에는 주로 돈 봉투를 준비한다.)시부모에게 예를 한 후 가족 일동에게 차례로 예를 하는데 시동생과 시누이는 서로 맞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조부모가 계시면 시부모는 폐백을 받기 전에 별실에서 자기 부모에게 시부모 자신이 받은 것과 같은 예로 폐백을 드린다.

옛날 예법에는 폐백은 시부모님에게만 올리는 것 이였지만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시조부모님에게도 올리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폐백 품은 대추 1되 정도를 시아버지에게 올리고 시어머니께는 예전에는 포 육과 꿩고기나 쇠고기를 계강(桂薑)의 약밥을 더하여 포를 만들어서 올렸으나 지금은 통닭을 대신한다.

그리고 술을 준비한다.

 

 

[ 在來式 婚禮 재래식 혼례]

 

※ 재래식은 여섯 가지의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六禮 의 節次 (육례의 절차)

  1. 納采 (납채) = 서로 선을 보는 일로서 혼인이 결정된 후 혼례식 전에 보내는 幣帛(폐백) 흔히 혼례식 전에 靑,紅(청홍) 兩緞(양단)의 치마 감을 보내는  일이 있는데 그것에 비단 채자를 넣어서 納采(납채)라고 쓰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유래는 채택한다는  뜻으로 納采라고 부르는 것이다.

  2. 問名 (문명) = 이것은 서로 성명과 생년월일 부모 가문의 지체 등을 알아보는 일이다. 서로 알아보 아서 모든 조건이 합당한가 하는 기초적인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3. 納吉 (납길) = 서로 모든 조건이 합당한가를 알리는 것으로 사주 보내는 일은 이 納吉중의 하나인 것이다.

  4. 納徵 (납징) = 혼인을 하게 되는 證據(증거)로서 폐백을 보내는 것으로 즉 納幣(납폐)를 말한다.

  5. 請期 (청기) = 어느 날 혼례식을 지내면 좋은가 날자를 정하는 것으로 涓吉(연길이니 택일이니 하는 것은 대체로 이 청기의 한 절차다.

  6. 親迎 (친영) = 신랑이 친히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온다는 뜻 옛말에 예를 갖추어 맞아오면 아내가 되고 예를 치르지 않고 살면 첩이된다 라고 한것은 이 친 영을 대단히 중요하게 본 증거라 할 수 있다.

   ※ 친영하는 식은 두 가지 행사로서 奠雁(전안)과 醮禮(초례)가 있다.

 

 

喪禮(상례)

우리나라는 고래로 관 혼 상 제의 예가 복잡하고 까다로우나 그중에서도 상례가 가장 까다롭고 소위 예론도 많았다.

아직도 초상 상례때 執事分定(집사분정) 즉 호상 축 사서 사화 조빈 돈장 일직등을 정하여 상사 전반을 집행하고 있는 것을 가끔 목격하는데 실제는 대개 형식화 되고 말았다.그러나 상례란 엄수해야 할 인륜대사인 만큼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는 지켜야 하는 것이니 여기에 그 대강을 추려서 현실에 맞추어 간략하게 설명코져 하는 바이며 주로 부모상의 경우를 중심으로 하였다.

1. 初終(초종)

환자의 병세가 위독하여 회춘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가까운 친족에게 통지하고 주위를 조용히 하여 근신하고 환자의 의복을 평상복 중에서 깨끗한 것으로 갈아 입힌다.유명(遺命)이나 유언(遺言)이 있으면 이를 기록하거나 녹음으로 수록하여 보관토록 한다. 예론에 운명함에 있어 남자는 不絶於婦人之手(부절어부인지수)하고 부인은 不絶於男子之手(부절어남자지수) 라 했으니 즉 남자는 여자의 손에 운명을 아니하고 여자는 남자의 손에 운명을 아니하는 것이 예법이라 하였다.

 

2. 收屍(수시)

운명이 확인되면 눈을 감게 하고 시신의 머리를 북쪽으로 가게 하여 바르게 눕히고, 두손을 배위에 모아 부드러운 천으로 묶고, 귀와 코를 풀솜아나 타지 면으로 맊는다.홋이불로 시신을 머리까지 덥고, 병풍으로 가리우고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호곡하는 것이 제례 예법이다.수시(收屍)를 습(襲)이라고도 한다.사전에 수의가 준비되어 있으면 소렴(小殮)의 일부를 이때 입혀도 무방하다.

 

3. 皐復(고복)

고복은 초혼이라고도 하여 고인의 속적삼을 가지고 옥상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하여 휘두르며 고인의 성명이나 칭호 즉 모봉모씨 복을 세 번 연거푸 부르고 옷은 가져다가 시신 위에 덮는다. 수시와 초혼은 거의 동시에 한다.초혼이 끝나면 머리를 풀고 호곡하는 것이 옛 예법이다.

상을 당하면 도시에서는 점포나 혹은 상가에 상중표시를 하고 있는데 대문 위에 조등을 달고 상중이라고 써서 표시한다. 忌中(기중)이라고 흔히 써서 붙이는데 汽(기)字는 부모상의 소심외기(小心畏忌)라는 忌(기)字이므로 수하인에 쓰면 망발이 되므로 상중(상중)이라고 쓰는 것이 수상 수하를 막론하고 적당하다.상주들은 목욕이나 세면을 않으며 원래는 삼일불식(三日不食)이라 하지만 육식 강식(肉食 强食) 만을 삼가 미움이나 죽등으로 소식(素食)하는 것이 옛 법식이다. 그리고 의복은 운명 초혼 후에는 사치스럽지 않은 흰 옷에 흰 두루마기를 입되 성복례까지 외간상에는 왼편 소매를 빼고 내간상에는 바른편 소매를 빼고 주야로 장례시까지 곡을 그치지 않는다.

 

4. 訃告(부고)

상을 당한 사실을 일가친척 친지들에게 알리는 것을 부고라 한다.부고의 서식은 다음과 같다.

부고 서식1

※영결식을 거행할 때에는 영결 일시와 장소를 발인일시 앞에 기입하는 예도 있다.그리고 개별 부고를 못보내고 신문에 부고를 낼 때에는 맨끝에 괄호를 하고 개별부고 생략이라 쓴다.

부고 서식2

※ 호상은 장위 위원장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고인의 면복(免腹), 주손(胄孫) 또는 친족등 고행자(高行者)(문중어른)가 되는 것이 상례이나 관작이 있거나 명망이 있는 분이면 타성이라도 무방하다 이같이 타인이 호상이될 때는 부고 서식이 달라야 한다.근래에는 호상 외에 사자(嗣子) 차자(次子) 손, 친족대표,우인대표등을 부고에 열거하고 있으나 고례(古禮)에는 맞지 않은 일로 부고는 호상이 내는 것이다.상주가 직접 부고할 때는 다음과 같다.

부고 서식3

 

5. 小殮(소렴)

염습은 죽은 다음날 하되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행한다.

① 향을 삶은 물을 만들어 얼굴을 비릇하여 전신을 닦는다.

② 염의로 갈아 입힌다. 염의를 수의라고도 하며 망인이 입는 옷을 말함이니 가세에 따라 무명이나 명주로 만든 속 적삼 바지 저리 또는 도포로 되어 있다. 염의를 갈아 입히고 나면 버선을 신기고 단임을 매고 행전치고 허리끈과 도포의 끈을 매고 한지나 마포 즉 베로 만든 신을 시킨다.머리에 관이나 유건을 씌우고 다섯 개의 작은 주머니에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잘라 각각 따로 넣어 두었다가 대렴때 같이 넣는다. 귀와 코를 다시 막고 유시(柳匙)(버드나무 숟갈)로 불린 쌀 세숟갈과 동전 세닙을 입속에 세 번 떠서 넣는다. 쌀은 한번 넣고 천석 두 번 넣고 만석 세 번 넣고 십만석이요 라고 외치고 동전을 한번넣고 천냥이요 두 번넣고 만냥이요 세번넣고 십만냥이요 라고 외친다. 이것은 망인의 저승길에 노자로 드리는 의식이다. 그리고 명목 복건(暝目福巾)으로 얼굴을 덮는다. 악수(幄手)로 손을 가리고 두골이 아래로 쳐지지 않게 솜을 한지나 마포로 싸서 턱밑을 고이고 발목도 앞으로 숙여지지 않게 위와 같이 괴고 염이불로 시체를 싸고 염포로서 시신을 묶는다. 시신을 묶는 일을 염한다고 한다. 시신을 염할 때 견포나 마포를 쓰는 것은 훗일 유골의 보전을 기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염하는 작업은 근친자들이 하며 내간상에는 타인을 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근래에는 대다수가 염사를 통해 하므로 위와 같은 내용은 참고로 알아둘 필요가 있어 기술하는 바이다.

 

6. 大殮(대렴) . 入棺(입관)

운명 후 3일에 관을 시신이 있는 방으로 옮겨서 관이불을 관속에 펴고 관요를 깔고 枕(침)이라고 풋솜을 넣어서 만든 벼개를 머리가 놓일 곳에 놓고 시신을 관내에 넣어 관이불로 시신을 싼다. 이것이 끝나면 고인의 의복 마포등을 넣어 관소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한 다음 천개(天蓋)라 부른는 관 뚜껑을 덮고 나무 못으로 고정 시키고 유지나 명석으로 싼 다음 묶는다.(이상이 입관인데 근간에는 망인이 운명하신 다음날 입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쁜 세상에 문상객들에 대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입관이 끝나면 관 밑에 나무 토막을 깔고 실내에 관을 안치하고 병풍으로 가린다.

 

7. 成服(성복)

입관이 끝나면 상주를 비릇한 복인(服人)=(고인의 유복친)은 내의를 갈아 입고 상복을 갖추고 성복제를 지내고 외인의 문상을 받는다.

 

8. 殯所(빈소)

시신의 안치와는 별도로 영좌를 마련하는데 이를 빈소라 하며 실내에 병풍을 치고 그 앞에 교의(交椅)(신위를 모시는의자), 제상(제물을 올려 놓는 높은 상), 향안(香案)(향로와 향합을 올려놓는 소반), 모사(茅沙)(작은 그릇에 깨끗한 모래를 담아 그 중간에 약간의 띠를 꼿는다.

 

9. 魂帛(혼백)

혼백은 오색실로 만든 동심결(同心結)을 끼워 혼백함에 넣어 모신다.

 

10.銘旌(명정)

명정은 붉은 비단이나 명주의 전폭에 1m60㎝정도의 길이로 흰분에 아교를 썩어서 금분으로 고인의 관직과 성명을 쓴 것을 말하며 서식은 다음과 같다.

 

11. 喪中 祭禮節次(상중 제례절차)

① 降神(강신)-혼백을 모셔 강림토록 하는 것 : 상주 이하 참사자 전원이 곡을 시작하고 상주가 향탁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세 번 향을 피우고  일어나서 재배하고 다시 꿇어 않아 강신잔을 들어 상주 우측 집사자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한  다음 모사에 세 번에 나누어 따르고 잔을 제자리에 놓고 일어나 재배한다.

② 初獻(초헌)-첫 번째 잔을 올림 : 상주가 다시 향탁 앞에 꿇어 않으면 왼쪽에 있는 집사자가 신위 전에 있는 잔을 내려다가 상주에게 준다. 상주가 받으면 오른쪽 집자사가 주전자로 술을 따르고 왼쪽 집사가 다시 그잔을 신위 전에 올리고 그 집사로 하여금 수저를 육전 위에 북쪽으로 가게 가지런히 놓으면 참사자 전원이 고개를 숙이고 축관은 상주 동쪽(오른쪽)에 꿇어 않아 축을 읽음. 독축이 끝나면 상주는 곡을 하며 2배 재배하고 참사자 전원은 함께 곡을 한다.

③ 亞獻(아헌)-두 번째 잔을 올림 : 안상주가 잔을 드리되 초헌과 같은 절차로 하고, 밥 뚜껑을 열고 부인은 사배(형편에 의하여 안상주가 행사를 못하면 둘째아들 순으로 하되 그렇지 못하면 상주가 올림)사배한다.

④ 終獻(종헌)-세 번째 잔을 올림 : 아헌과 같이 함. 종헌은 형제의 둘째 동생이나 가까운 일가가 하되 밥그릇에 숟가락을 뒤로 가게 꽂고 2배 절한다.

⑤ 侑食(유식)-더 많이 음향하도록 함 : 집사자가 올려 놓았던 잔을 내려 퇴주 그릇에 세 번에 걸쳐 반잔정도 남게 따르고 상주가 주전자를 들고 반잔만 남은 술잔에 만잔이 되도록 따르고 나서 잔을 동 집사자가 받아서 올려 놓는다.

⑥ 闔門(합문)-상주 이하 전원이 밖으로 나오고 문을 닫음 :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상주는 문 앞에서 안상주와 서로 향하여 양수거지하고 정숙하게 엎드려 있음. 참사원 중 남자는 상주 뒤에 여자는 안 상주 뒤에 각각 양수거지하고 기다림. 노약자는 다른 장소에서 편히 있을 수 있으며 합문하는 시간은 예법에 일반구식지경(一飯九食之頃)이니까 지금 시간으로 4-5분 정도임.

⑦ 啓門(계문)-축관이 흐험 소리를 세 번하고 문을 열면 상주부터 전원이 들어가서 곡을 한다.

⑧ 獻茶(헌다)- 숭늉을 국(갱)으로 바꾸어 올리고 밥을 숟가락으로 세 번 떠서 숭늉에 밥을 말아놓고 밥 뚜껑을 덥고 정저한다. 이때 밥에 꽂아 놓은 숟갈을 숭늉 그릇에 숟갈 자루가 북쪽으로 가도록 반드시 담구어 놓는다.

⑨ 利成(고이성)-제사가 끝남을 고한 : 잠시 곡을 한호 축관이 상주옆에 나아가 이성(利成)하고 고한다 상주는 읍하지 않는다.  집사자는 숟갈, 젓갈을 내려 시접에 놓고(철시 복반) 참사자 전원은 2배 절을 올리고(사신(辭神)) 제사를 종료한다.

⑩ 撤床(철상) : 모든 제사 음식상을 물리는 것을 말하며 제상 위쪽에서부터 다른 상으로 공손히 옮겨 물린다.

 

  祭禮(제례)

제례라 함은 시조 이하 선대 선조들을 추앙하는 여러 가지 의식을 비릇하여 돌아가신 고조부모 형제와 배우자 기타 친족을 추도하기 위하여 돌아 가신날에, 혹은 사시 명절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 절차를 말한다.

 

1. 제사의 유래

제사를 지내게 된 동기를 살펴 보면 먼 옛날 사람이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 지변이나 또는 사나운 맹수등이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늘과 땅 深水(심수), 거목(巨木), 높은 산, 바다, 조상등에게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던 것이니 이것이 즉 제사가 발생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연 변화나 어떤 공격체나 또는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하여 져 온 제사는 중세와 근세에 이르러 차츰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하여 졌으나, 그 대신 유교적인 번잡한 절차와 자연숭배의 미신적인 의식이 높아 지므로 가정마다 연간 제사를 지내는 횟수는 무려 48회 이상이 되었다. 제례는 상례와 마찬가지로 그 의식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옛부터 유학자나 禮文(예문)가 사이에서 갑론을박의 논쟁이 많았을 정도였다.

 

2. 제례수상(祭禮隨想)

 상례와 제례에는 말도 많고 형식 절차도 가지 가지이다. 옛날에는 이논란으로 조정 정사가 어지러워졌고 학자와 선비들이 점잖치 못하게 파당을 지어 생사를 걸은 싸움질까지 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주문공가예(朱文公家禮)는 우리나라 사례(四禮)의 모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의의를 달지 못하리라.

가례는 조석 상식에 불용주(不用酒)라 하였고, 퇴계선생은 有酒(유주)여든 獻一酌(헌일작)이 可(가)라 하였고, 上食(상식)에 立哭(입곡)이요 無拜(무배)는 孝子(효자) 之於親(지어친)에 每晨唱爺而無拜故(매신창야이무배고)로 不忍以神事之故也(불인이신사지고야)라 하였는데, 단 삭망에는 보통 상식과 달리해서 설전(設奠)을 하므로 戱一酌(헌일작)하고 재배하고 辭神(사신)에 재배한다. 상주가 장례 전에는 헌작을 타인을 시켜 대신 잔을 올리게 하는 것은 葬前不관(장전불관)가 禮有明文(예유명문)이므로 불결한 것이 꺼려함이라 하였다(沙溪所 말). 魂帛(혼백)은 비단으로 同心結(동심결)을 맺어서 장례 전에 영혼이 의지할 곳을 만드는 것인데 하관 후에는 광중(壙中)에 봉안하는 것이며, 宋尤庵(송우암)은 冬心結(동심결)이 상고시대에 浮男浮婦(부남부부)가 정표하는 매듭이라 해서 천한 것이라 패지시키고 細布(세포)로 四通五達(사통오달)로 접도록 하였던 것이다. 가주(假主)는 밤나무로 신주를 만든다.

상고시대에는 시동(尸童)이라고 七, 八세된 어린이를 신위로 않히고 제사를 지냈는데 나무로 만든 신주로 대신했고, 작금에 와서는 밤나무로 造主(조주)를 아니하고 백지를 木主(목주)와 같이 접어서 글씨를 써서 신위로 모시는 것도 假主(가주)라 한다,

右(우)가 동이니 東高 西卑(동고 서비)라 해서 생전에는 남우 여좌로 設席(설석)이 되고 사후에는 西高 東卑(서고 동비)로 남우 여좌가 되니 그 이유는 日月出歿(일월출몰)이 以東爲首(이동위수)하고 山水之勢(산수지세)는 西下東向故(서하동향고)로 陰界(음계)에는 西爲上(서위상)이다. 예문에 조손이 不同杖(불동장)이라 하여 승중상에 증조가 생존이시면 有杖(유장)이지만 同途(동도)에서는 집장(執杖)하지 않는다.

 제사밥을 통칭 메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인도나라 말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오면서 불전에 올린 밥을 메라 하였기 때문에 제사에 올리는 밥도 메라고 해서 공통어가된 것이며, 일본에서 밥을 메시라 하고 쌀을 고메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말이다. 종부가 만일 친가부모의 상복을 입었으면 제삿날에 임시로 옥색옷을 입으라 하였다.

 考비位(고비위)를 各單說(각단설)로 해서 한분만 제사하는 집도 있고 합설해서 내외를 함께 지내는 집도 있으나, 單祭(단제)는 禮之情(예지정)이요 合祭(합제)는 禮之情(예지정)이요 合祭(합제)는 禮之情(예지정)이라 하였으니 單祭(단제)건 合祭(합제)건 모두 좋았으나 대다수가 합제하고 있다.동유설 묘소에 節祀(절사)는 불가하다 고 역설한 분들이 많은데 그 답변에 顔子使於諸侯(안자사어제주)라가 返國奠墓而八(반국전묘이팔)이라고 하였으며, 춘추전국시대에도 묘제가 있었고, 맹자에 東郭播間之祭(동곽파간지제)에 醉飽而歸(취포이귀)라하는 말이 있으니 육국시대에도 있었으며 장량의 자손이 於穀城(어곡성)에 竝祀黃石(병사황석)이라하 였으니 서한시에도 있었고 漢武帝今諸將(한무제금제장)으로 賜小宇祭墳墓(사소우제분묘)라하니 자고로 묘제가 있었던 일이다.

 율곡은 말하기를 焚香(분향)과 隆神(융신)에 합해서 한번만 재배하고 참신에 在位者皆再拜無妨(재위자개재배무방)이라 하였다.

 예문에는 再不焚香(재불분향)인즉 분향은 請神(청신)이니 降神(강신)시에 한번만 하고 헌작시마다 분향은 못쓴다 하였다.예론자들이 선참신 후참신이니 선강신 후참신이니 하는 이론이 있으나 행사시 감실에서 출주할 시에 감실문을 열고 선재배한 후 출주하는 것을 선참신이라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참신재배가 없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영정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가례증해에 보면 주자도 於長子 影情(어장자영정)에 每致奠(매치전)에 不盛設(불성설)하였다 하는 문구가 있으니 영정에도 치제 무방하다.尤庵(우암)은 평소 所嗜之物(소기지물)은 不可全廢(불가전폐)니 三年喪內(삼년상내)에는 拘肉山菜(구육산채)라도 用之無防(용지무방)이라 하였다.祭有不浮(제유불부)하니 초상이 났을 때 장례전이면 제사를 지내지 않고(廢祭(폐제)), 아기를 낳을 때 (産故(산고))는 삼일 이내면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분가해 살 때는 관계없다.

 명제는 말하기를 시조(始祖)제사에는 賜姓(사성)관계로 성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제사 축문에 초헌관의 성명을 쓰는 것도 가하다고 하였다.산신제는 반드시 제사철상과 동시에 지내는 법이나 주변에 누대묘소가 있으면 각 묘제사를 마친뒤에 최고위 묘좌편에 진설하고 지내라 하였다. 그러나 묘소거리가 멀어서 다시 제물을 갖추어 돌아가기가 어려운 곳은 최고 제사를 마친 직후에 올리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산신제는 선토제니 후토제니 하는 논란이 있으므로 예문을 이기하여 둔다. 산신제는 자기조상의 영세를 위탁한 산신에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앞으로의 수호도 부탁하는 의미가 있어서 옛부터 선토제 후토제를 논란 하였을 만큼 중요한 제사이다.그러므로 원위 산소 상부좌편에 터를 닦아두는 것이 통례이며 그 행사도 반드시 제주가 올리도록 하고 다른 제관에게 대행시켜서는 결례이며 또 제수도 몇가지를 진설함은 더욱 잘못이다.

 송동춘이 김사계한테 후토제를 묘제전에 지내는 것이 어떷냐고 물어니까 사계는 나는 선조세서의 묘제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묘제후에 후토제를 지내는 것이 옳은줄 믿으오. 왜냐하면 우리아버지가 그곳에 계시니까 그렇소 라 하였고, 또 손우는 말하기를 옛부터 오사의 禮祭(예제)가 모두 그곳 신에게 먼저 지내는데 어찌 후토제만 다를 수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 선조를 보호하여 주고 있는 토신이니까 묘제에 앞서 후토제를 올려야 옳다. 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주장이 상반되지만 후토제는 앞에서 묘제 직후에 올리고 묘제때와 같은 제수를 쓰고 또 제주가 직접 올리되 분향은 않는다, 한다의 양설이 예서에 있다.

 

3. 제사의 종류

 제례가 까다로운 만큼 그 종류도 많다. 그 대강만을 추려보아도 사당에서 올리는 초하루 보름의 삭망제(朔望祭)를 비릇해서 각종 사당 고유제 정월 원일과 추석(8월15일)의 다례 혹은 절사를 비릇한 重三(중삼)(3월3일),단오(5월5일),流頭(유두)(6월15일)重陽(중양)(9월9일), 冬至(동지)등 세속 절사가 있고, 또 묘제로 한식과 10월에 5대이상 묘소에 올리는 歲一祀(세일사)(時亨(시형))인 묘제, 그리고 5대이하의 기일(忌日)에 올리는 기제사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큰 대제(大祭)는 춘하추동 사시절 가운데 달(仲月)에 올리는 시제(時祭)라 하겠다. 그러나 대제라 하는 시제는 오늘날에는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5대가 되면 사당에서 신주로 모셔져진다. 그러므로 기제의 대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및 배우자이다. 다만 무후한 삼촌 이내의 존속 동항렬 또는 비속의 친족에 대하여는 기제를 지낼 수 있다.기제는 고인이 별세한 날에 해마다 한번씩 올리는 제사로서 고인의 추억을 더듬어 별세한 그날을 길이 잊지 못하여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금기(禁忌)한다는 뜻에서 올리는 제사이며 그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도 한다. 기제의 봉사 대상을 별세한 부모 조부모 증. 고조부모와 배우자로 정한 것은 우리나라 가족제도에 따른 생활형태로서 이 분들은 생시에 한가족으로서 생활을 같이 해왔고 가족에 친밀한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니, 조부모의 경우는 일찍 돌아 가셨다 해도 아버지의 또는 할아버지의 조부모이기 때문에 가정생활에서 항상 귀에 익혀 듣게 되고 한가족으로서의 기억이 생생하여 진심으로 그분의 별세를 슬퍼하며 그리웁게 생각되기 때문일 것아다. 그러나 조부모의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님들이란 관념과 인식은 갖게 되나 친밀한 가족 관념으로서는 다소 등한시되기 쉽다. 그러나 자손이 없이 별세한 삼촌이나 숙모 형제자매, 아들 또는 친조카들에 대하여서는 사정이 허용된다면 기제를 지내야 한다. 삼촌 내외분이나 형제자매, 아들 또는 친조카등 역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가족 관념으로서의 정이 두터울 것이며 인정상 별세한 날을 추모하는 뜻에서 간소하게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친족에 대한 정의(情誼)라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의식은 어느 나라에도 다 있다. 우리나라에 제례는 원시적인 형태로 계속하여 오다가 고려 말기와 이조를 통하여 중국의 유교 사상에 의해서 제대로 형식과 절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기제제도는 고려 공양왕2년 2월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발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례 규정에서 비릇되거니와 그에 의하면 대부(大夫)이상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3대, 7품이하와 일반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 지내라고 하였다.

 그후 이조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예전편에 규정한 것을 보면 사대부 이상이 사대 6품이상이 3대, 7품이하는 2대, 일반서인은 부모만을 지내도록 되어있다. 그 당시는 전제 군주제도로서 계급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제사의 봉사 대상까지도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그러나 그 당시 7품이상의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수는 불과 2할 미만으로서 부모만을 모시는 일반 서민들의 수는 국민전체의 8할이상을 차지하였으므로 우리나라의 민속화된 기제사의 봉사대상은 대부분이 부모 당대에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부모 당대만의 기제를 지내오다가 한말 갑오경장의 여파로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너도나도 4대봉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가정의례준칙의 3대봉사도 실은 그 근거의 바탕이 경국대전에 의거한 것이고 보면 잘못이 없다고할 수 있다.

 

4. 기제일

 기일은 휘일 이라고도 하며 고인이 별세한 날을 말한다. 별세 전날이 입제(入祭)일 별세한 날이 기일(忌日), 그 다음 날이 파제일(罷祭日)이다. 대제(시제)는 3일 재계(齋戒)(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하는 것)를 하고 廟(묘), 묘제(墓祭)에는 2일 기제에는 1일 재계(齋戒)이다. 입제일에는 제주와 주부가 목욕제계(齋戒)하고 음주를 삼가며, 가무를 금하고 상가의 문상도 안가는 법이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의 생존시를 희상하면서 추모하는 법이다.

 

5. 기제시간

 예문에는 별세한 날의 자(子)(23시에서 다음날01시)시에 제사를 지낸다고 되어 있다. 厥明祭(궐명제)니 質明祭(질명제)니 한다. 궐(厥)은 기야(其也)요 질(質)은 성야(成也)니 궐명하면 미명(未明)이요 질명하면 먼 동이 틀 무렵이다. 그러니까 자정(零時)부터 인시(寅時)(05시)까지 날이 새기전 새벽에 기제를 올리는 것이 예이다. 신도(神道)는 음(陰)이라 하여 늦 밤중에 활동을 하며 닭소리가 나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예문에는 없는 미신적인 이야기다.

 날이 바뀌는 첫새벽에 기제를 올려야 한다는 궐명 행사의 예문정신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제일 먼저 고인의 제사부터 올리는 정성을 강조한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와 생활 여건에서 볼 때 한밤중 제사는 핵가족화 되어서 분산 거주하는 가족들의 참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음날 출근과 활동에도 지장이 많게 된다. 그래서 가정의례준칙을 보면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저녁때라면 사회활동을 하고 귀가하는 시간이며 제관들이 모이기 좋은 시각이어서 도시에서는 저녁 8시-9시사이에 행사하는 집안이 대부분이며 또 결례도 아니라고 본다. 종례에는 가정에 따라서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제청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두어서 항상 그 장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허식에 불가하며 지나친 것이다.

 

6. 제주(祭主)

 제주는 고인의 장자 또는 장손이 되며, 장자 또는 장손이 없는 경우는 차차 또는 차손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주재한다. 상처한 경우에는 남편이나 그의 자손이 제주가 되고 자손이 없이 상부한 경우에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

 제주라 함은 제사를 맡아서 지내는 ,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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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참사자(參祀者)

 기제사는 고인이 별세한 날을 추모하는 의식으로 순수한 가족적인 행사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행사에는 고인의 직계 자손과 가까운 친척들만이 참여하게 된다. 특히 고인의 직계 자손으로서 먼 타지방에 출장을 하였거나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 제사를 지내는 시간쯤 해서 여행지에서 묵념으로라도 고인을 추모하여야 한다.

 종례의 관습으로는 기제사 날이 되면 멀리 출타했던 사람도 반드시 집에 돌아와야 하며, 집에 있는 사람은 말을 타거나 가까운 거리라도 외출하지 않을뿐더러 집에서 손님도 받지 않고 금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생활여건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정일 뿐만 아니라 제사를 위해서 공무를 소흘히 하고 가계에 영향이 미치도록 한다는 것은 고인의 영혼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8. 행사방법(行祀方法)

 기제는 단설과 합설이 있는데 양위가 모두 별세하였을 경우에는 합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행사방법은 고인의 내외분을 함께 모시는 것을 합설이라고 한다.  또는 그날 별세하신 분만 모시는 것을 단설이라고 한다. 부부는 일신이라는 말대로 정분을 보더라도 당연히 합설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되며  또 지금 대부분이 합설하고 있다.  

 종래에는 가가 예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가정의례의 절차와 형식이 조금씩 달라 졌던 것이다. 그원인은 이조시대에 사색당쟁으로 각 파간에 다른 파에서 하는 절차대로 따라할 수 없다 하여 그 나름대로 조금씩 바꾸어서 달리 했기 떄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봉사 방법이나 제물을 진설하는 형식이니 그러기 때문에 속담에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참견 말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합설할 경우에는 제상을 두분 따로 차릴 것이 아니고 한 제상에 메와 잔만 두분 것을 따로 올리면 된다는 예문이 있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제사는 4대를 윗분부터 차례로 지내 왔으나 지금은 4대를 합설하는 집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합설하려면 윗 어른을 왼쪽에서 차례로 모신다. 혹은 아랫분은 곡설(曲設)하여도 무방하다.

 

9. 신위(神位)

 신위라 함은 고인의 영혼 즉 신을 모시는 곳을 말하는데 종례에는 지방으로 모셨으나 지금은 많은 가정에서 영정(사진 또는 초상화)을 모시고 지내고 있다. 기제사의 본뜻이 고인의 별세한 날을 추모하는 의식이라 하였으니 그 추모하는 정을 제대로 고취시키려면 고인의 생전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사진을 모시는 것이 예법에 없다 하여 탓할 것이 아니다.그러니 별세하신지 오래되어 사진이 없는 경우에는 지방을 쓰겠지만 생전에 사진을 한 장씩은 꼭 찍어 두었다가 별세 한 뒤에 상례의 영좌나 제사의 신위로 모시도록 하였으면 한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철저한 유교 의식에 따라서 위호라 하여 사대부가에서는 집집마다 사당을 짓고 역대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수많은 제사를 지내야 하였으나 지금은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 졌으니 세속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 종이에 쓴 지방 보다는 사진이 훨씬 실감있고 그리움도 솟지 않겠는가?

 

10. 지방(紙榜)

 제사지낼 때에는 지방을 쓰는데 지방이라는 것은 고인의 신위 표시를 말하는 것으로서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분은 지방이 필요없지만 그렇지 않은 분은 흰 종이위에 작고하신 분의 호칭과 관직을 먹으로 정성껏 써서 교의 또는 제상정 후면 병풍에 붙이거나 지방함에 붙인다.지방길이는 세로 길이가 22㎝가로길이가 6㎝정도이나 지방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 사후에는 서고동비라 좌편에 考位(고위)(남) 우편에 비위(여)를 쓴다.

 ◆ 考(고)는 父(부)와 같은  뜻으로 생시에는 父(부)라 하고 사후에는 考(고)라 하며 사당에 모실 때에는 爾(이)라고하며 비는 모와 같다. 생시에는 모(母) 사후에는 비 라한다.

 ◆ 고인이 관직이 있으면 학생(學生) 대신에 관직을 쓰고 부인의 호칭도 달라 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맞지 안다고 본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각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  妻(처)제사에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가 된다.

 

11. 제례 절차

                                                                          제례(祭禮) 절차

 

                                        기제사

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제주(종손 또는 장손)가 혼자 2배한다(분향 강시)

② 제상의 잔을 내려 술(酒)을 조금 따뤄 향불 위에서 3번 돌려 잔을 데우고 난 다음 잔의 술을 모사(퇴주) 그릇에 따르고 빈잔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참여 제관 전원이 2배 올린다.(참신)

③ 다시 상의 잔을 내려 술을 가득 따르고 제자리에 올려놓은 다음 수저를 도적(육류나 전 또는조기)위에 가지런히 북쪽을 향하게 올려놓고 축관은 축을 읽는다.(축을 읽지 아니 할 때(제관이 혼자 일 때는 축을 읽지 아니함)는 축문을 제관 좌측에 놓아둠)

    이때 제주는 엎드려 조상을 머리에 떠올려 본 다음 축이 끝나면 혼자 2배 절한다.(초헌-종손 또는 장손)

④ 초헌관과 자리를 바꾸고 차 제주(아헌관)도 잔을 올리고 밥그릇의 뚜껑을 벗기고(게반) 혼자 2배 절한다.  

    (아헌-제주의 다음 가는 근친자 또는 장손)

⑥ 제주(초헌관)는 다시 종헌관과 자리를 바꾸고 술잔을 내리면 술잔의 술을 3번에 걸쳐 술잔의 술이 반정도 남게 모사에 따른

   다음  다시 따른 술잔에 잔을 가득 채워(첨작) 올리고 모든 제관이 업드려 약 4-5 분정도 있다가 국을 따뜻한 물그릇으로 바꾸고(헌다)

    3-5분 정도 있다(합문)가 축관이 헛기침(계문)을하고 일어서 이서라고 하고 밥 뚜껑을 덮고 수저를 모두 거두어 본래 자리에 두고 (철시복반) 참사자 전원이 2배 절을 올린 다(사신)음 지방과 축문을 사르고     철상을 알리고 제사를 종료한다.

 

                                                                     설 날 차례

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제주(종손 또는 장손)가 혼자 2배한다(분향 강시)

② 제상의 잔을 내려 술(酒)을 조금 따뤄 향불 위에서 3번 돌려 잔을 데우고 난 다음 잔의 술을 (모사)퇴주 그릇에 따르고 빈잔을 제자리에 올려놓고(강신뇌주) 참여 제관 전원이 2배 올린다.(참신)

③ 다시 상의 잔을 내려 술을 가득 따르고 제자리에 올려놓은 다음 수저를 도적(육류나 전 또는 조기)위에 가지런히 북쪽을 향하게 올려놓고 떡국 그릇의 뚜껑을 벗기고 숟가락을 뒤로 가게 담근 후 제주 혼자     2배 절한다.

④ 참사자 전원이 엎드려 3-4분 정도 있다가 헛기침 3번을하고 모두 일어나고 집사는 떡국 그릇의 뚜껑을 다시 덮고 수저도 내려 제자리에 내려 둔다.

⑤ 참사자 모두 2배 절하고 철상을 알리고 차례를 종료한다.

           ※ 명절 제사에는 축이 없음.

                                                                      추석 날 차례

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제주(종손 또는 장손)가 혼자 2배한다(분향 강시)

② 제상의 잔을 내려 술(酒)을 조금 따뤄 향불 위에서 3번 돌려 잔을 데우고 난 다음 잔의 술을 퇴주 그릇에 따르고 빈 잔을

    제자리에 올려놓고(강신뇌주) 참여 제관 전원이 2배 올린다.(참신)

④ 참사자 전원이 엎드려 4-5분 정도 있다가 헛기침 3번을 하고 모두 일어나고 집사는 수저를 내려 제자리에 내려 둔다.

⑤ 참사자 모두 2배 절하고 철상을 알리고 차례를 종료한다.

※ 명절 제사에는 축이 없음.

                                                                   제례 축문 쓰는 법

 

상례와 제례에 따르는 여러 가지의 축문과 고사를 씀에 있어서 흔히 나오는 주요 문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둔다.

① 太歲(태세) : 제사 지내는 해의 天支(예를 들어 2001년은 辛巳年이므로 천지는 辛巳임)

② 朔日(삭일) : 제사든 달의 초하룻날 일진(日辰)

③ 日辰(일진) : 제삿날의 간지(干支) 이상은 육십갑자에 따른 것인데 책력이나 음력과 일진이 나오는 달력에 보면 알 수 있다.

④ 某官(모관) : 남자의 경우 관직이 있는 사람은 그 관명을 쓰고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⑤ 某公(모공) :남자의 경우 타인이 말할 때는 본관과 (姓)公(공)이라 쓰고 자손이 직접 제사 지낼 때에는 府君(부군)이라

                    쓰며 연소자에게는 이를 쓰지 않는다.

⑥ 某封(모봉) : 부인의 경우 옛날에는 남편이 관직에 오르면 그의 처도 따라서 품계를 얻어 호칭 했으나 그것이 없으면

                     孺人(유인)이라 쓴다.

⑦ 某氏(모씨) : 부인의 경우로써 남편에 따른 외명부 호칭을 쓰고 그 밑에는 본관과 성씨를 쓴다.

⑧ 祭主 寸稱(제주 촌칭) 제사를 지내는 자식의 촌칭인데 초상을 당하면 졸곡 전에는 父喪(부상)에는 고자(孤子), 모상에는

   애자(哀子), 부모가 모두 안계실 때에는 고애손(孤哀子)라 쓰며 조부상에는 고손 (孤孫), 조모상에는 애손(哀孫)),조부모가

   모두 안계 실 때에는 고애손(孤哀孫),이라 쓰고,   담제후에는 부모 제사에 는 효자(孝子)조부모 제사에는 효손(孝孫),

   증조부모제사에는 효증손(孝曾孫) 또는 증손(曾孫), 고조부모 제사에는 효현 손(孝玄   孫)또는 현손(玄孫), 남편의

   제사에는모씨(某氏), 아내의 제사에는 부(父)라 쓴다.

⑨ 祭位(제위) : 제사를 받을 당사자인데 제주와의 촌수에 따라 각각 달리 쓴다. 부친은 현고(顯考), 모친은 현비(顯), 조부는 현조고(顯祖考),조모는 현 조비(顯祖), 증조부는 현증조고(顯曾祖考), 증조모 는 현증조모(顯曾祖),고조부는  현고조고(顯高祖考) 고조모는  현고조비(顯高祖), 남편은 현벽 (顯 벽), 처는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이라 쓴다. 현자(顯字)는 고인을 높이는 말이다.

⑩ 告祀者 姓名(고사자 성명) : 산소에서 토지신에게 고사를 지낼 때 직접 제주가 아니고 타인이 지낼 때에는 그사람의 성명을 쓰고 직접 제주가 지낼 때 에는 제주의 이름만 쓴다.

⑫ 敢昭告于(감소고우) : 처의 경우는 감자를 삭제하고 昭告于(소고우)라 하며 제(弟)이하에게는 고우(告于)만 쓴다. 여기에서 밝혀둘 것이 있으니 감소고 우라는 말은 감히 밝혀 아뢰옵니다,감조곡우라고도  읽고 감소고우라고도 읽는다. 그런데 자원(字原)을 보면, 昭(소)를 (소)라하면 評也(평야), 昭代(소대), 著代(저대)등의 경우이며 光也(광야), 明也(명야), 曉也(효야), 일 경우에는 조 라한다. 그리고 고(告)는 告上曰告(고상왈고)(곡)이요, 發下曰고(발하왈고)(고)라는 말이 廣韻(광운)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감소고우로 흔히 읽지만 감소곡우가 정확한 讀祝(독축)이다.

⑬ 哀慕不寧(애모불녕) : 처에게는 悲悼酸苦(비도산고) 不自勝堪(부자승감), 형에게는 悲痛無己(비통무기) 至情如何(지정여하),弟(제)에게는 悲痛畏至(비통외지) 情何可處(정하가처)라한다.

⑭ 酒果用伸虔告(주가용신건고)- 제이하에게는 酒果(주과) 用告(용고) 厥由(궐유)라 쓴다.

    謹以(근이)- 처와 弟(제)이하에게는 玆以(자이)라 쓴다.

    伏惟(복유)- 처와弟(제)이하에는 쓰지 않는다.

    尊靈(존령)- 처와 弟(제)이하에게는 惟靈(유령)이라 쓴다.

    哀薦 紙薦(예천 지천)- 처와 弟(제)이하는 陳此(진차), 백숙부모에게는 薦此(천차)라 쓴다.

    饗(향)- 높이 받드는 문자이나 줄을 바꾸어 顯(현)자와 함께 높이 쓴다. 顯(현)자는 한자(1字) 높이 쓴다.

⑮ 기타 참고사항 : 정월 설날이나 8월 추석과 같은 절사에는 축이 없고 단작(單酌)으로 초헌만 하며 그 밖의 절차는 기제와 같다. 또 묘제의진설이나 절차는 기제사에 준하지만 먼저 참신하고 후에 강신한다.

 

 

축문(祝文)

 

축문 예시

축문 예시

풀이: 연월일 孝孫(효손) 某(모)는 敢(감)히 고합니다.

할아버님

할머님 해가 바뀌어서

할아버님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옵소서

고조부모 축문

증조부모 축문

조부모 축문

부모 축문

풀이: 昊天罔極(호천망극)=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편 축문

풀이: 不勝感愴(불승감창)=슬프고 괴로운 마음 이기지 못함.

아내 축문

풀이: 亡日復至(망일복지)=諱日復臨(휘일부림)과 같은 뜻이며 다만 격을 조금 낮춘 것임.

형 축문

풀이: 情何悲痛(정하비통)=그리운 정과 비통할 마음 한량 없음.

 

묘제축(墓祭祝)

풀이: 연월일 몇대손 某(모)는 몇대 할아버님 묘소에 敢(감)히 告(고)하옵니다.

節候(절후)가 바뀌어 임 서리가 내렸사옵 기에 封墳(봉분)을 바라보고 그리워 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삼가 몇 가지 술과 음식으로 歲事(세사)를 올리오니 흠향하여 주옵소서.

 

파묘 ( 묘지이장절차 )

   移葬(이장) 

화장을 위한 파묘와 묘소를 옮길때 꼭 알아야 묘이장 절차를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큰 일을 앞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장을 위해 필히 준비 할 것은 유해를 수습 할 수 있는 한지와 고인의 명정이다.

이장도 장례이기 때문에 명정을 써야한다.

누구한테 부탁할 필요 없이 한지를 가로 20cm정도, 세로 80cm정도(크기는 상관 없음) 잘라서

붓이 없으면 검은 매직펜으로 아래와 같이 크게 8개 글자를 쓰면 된다.

 

  

이름이 洪 吉童인 경우 南陽洪公吉童 之靈 (남자)  孺人南陽洪氏 之靈 (여자)

한지에 큰 글씨로 쓰면 되고, 이장하면 유해 위에다 덮어서 묻고 화장하게 되면 같이 태운다.

명정은 고인의 이름표니 반드시 준비해야한다.

<이장의 절차>

 

1.이장 절차(이장하기전)

 

우리 선조들은 이장하기 한달 전이나, 하루 전 미리 破墓(파묘)할 묘에 가서 술과 과일을 놓고 이장을 알리는

축문을 읽었으나 요즘은 거의 생략하고 있다.

 

참고로 토지신에 올리는 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감소고우

 維歲次              (   )(   )敢昭告于

  토지지신   자유                 복택자지 공유타환

  土地之神 玆有  (        )  卜宅玆地 恐有?

  장계폄천우타소 근이 청작포과  지천우신 신기우지  

  將啓?遷于他所 謹以 淸酌脯果 祗薦于神 神其佑之  

   

  

 

(토지신이시여 ○○의 묘를 여기에 써놓고 보니 여러 걱정으로 염려되어

 묘를 열어 옮겨 가려고 하니 신께서 도와주시기를 고한다는 내용이다)

 ?축문 쓰는법은 (블러그 제목) 가정상식- 알기쉬운제례의 축문 쓰는 법을 참고 할 것.

 

 

2. 이장 절차(파묘하기전)

 

파묘하기 직전에는 반드시 술을 올리고 절하는 절차를 거쳐야하며,

축문도 준비하기를 권한다.

만약 축문을 읽지 않으려면 이장 할 묘에 술을 올리고 재배하고 나서

“편한 자리로 모시려하니 움직이거나 놀라지 마십시오.”하고 큰소리로 고해야 한다.

 

 

◐ 파묘축  (파묘 할 때 올리는 축문)

 

 

유세차                         감소고우

 維歲次 ○○年 ○○月○○朔 ○○日 ○子○○ 敢昭告于

   (고학생부군)   장우자지  세월자구  체백불영

  (考學生府君)  葬于玆地   歲月玆久 體魄不寧

  금장개장   복유존영     불진불경

  今將改葬   伏惟尊靈   不震不驚

 

?축문해설?○○년○월○일 ○○은 감히 고하나이다.

묘를 이곳에 모셨으나 체백이 편안치 못 하실까 염려되어 다른 곳으로 모시려 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존영께서는 움직이시거나 놀라지 마시옵소서.

 ?시작부분에서 顯考學生府君 까지는 (블러그 제목) 가정상식- 알기쉬운제례의 축문 쓰는 법을 참고 할 것.

 

 

3. 이장 절차(파묘)

 

고사가 끝나면 묘를 파는데, 자식들 중에 장손(맏형이 없으면 맏형의 아들이하고 없으면 둘째형 순.)이

“파묘, 파묘, 파묘” 하면서 묘의 서쪽부터 네 방향을 찍어놓는다.

그러면 다음 부터는 포크레인으로 봉분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미리 유해를 정리 할 수 있는 한지나 무명천을 준비 하였다가 장비가 묘를 어느 정도 정리하면

호미로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낸다.

유해(遺骸) 수습도 순서가 있으니,

유해(遺骸) 는 다리(발)쪽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머리를 수습한다.

깨끗한 천으로 흙을 닦아야 하며

모두 수습하였으면 유골위에 명정(銘旌)을 올려 이동한다.

 

화장을 하려면 한데 모아도 상관없지만

다시 매장을 하려면 손가락 발가락뼈 하나하나 원래 위치되로 섞이지 않고 그대로 이동 할 수 있어야하며

부러지거나 토막난 뼈는 흩어지지 않도록 가는 대나무 가지에 실로 묶어야 한다.

 

더러는 묘에 유해가 없다는 분들이 있는데 깊이 파 봐야 한다.

묘를 묻을 때 혈을 찾아 묻기 마련인데 이 혈토가 땅 표면에 가깝게 있지 않다.

그래서 오래된 무덤도 1.5m이하 깊이에서 뼈가 발견되기도 한다.

풀과 나무가 자라는 표토층을 지나 거칠은 표층이 나오고 심토층이 나오면 이곳을 혈토라고 하는데

이 혈토는 마사토 비슷한 노르스름한 것과 황토 비슷한 붉은 단단한 흙이 대부분인데 이런 층에다 관을 묻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이 묻히게 되는 것이다.

물이나 습기가차서 유해가 소멸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직감으로 느낄 수 있다.

즉 흙을 긁어내다보면 뼈는 없어도 물기가 있는 곳에 재처럼 새까만 가루 같은 것이 보인다.

바닥이 단단하고 평평한 지반으로 느껴지면 다 팠다고 볼 수 있다.

(옛날 묘들은 거의 바닥에 석회로 다져서 탄탄하다.)

예전에는 손으로 작업해도 깊이 팠는데 요즘 장비로 파면서도 겉흙에다 매장하는 사례를 보고 왜 그렇게 얕게 파는가 했더니

깊이 파면 물이 나와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얕게 파도 물이 차는 묘가 따로 있는 것이다.

혈토는 돌처럼 단단한 지반이다. 오히려 표토층이 습한 곳이다.

조금 더 깊이 파는 것과 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4.이장 절차(묘자리 파기전)

 

새로운 묘 자리에도 땅을 파기 전에도  산신祭를 올린다.

(간단하게 술과 안주만 올리고 절하며 축문은 생략해도 된다.)

 

 참고로 ▶토지신에 올리는 축문(새로 파는 묘)

 

 

    유 세 차                                                         감소고우

  維 歲次 ○○年 ○○月○○朔 ○○日  ○子○○  敢昭告于

   토지지신       금위   현(고학생부군)         택조불리    장개장우차

  土地之神   今爲  (考學生府君)  宅兆不利  將改葬于此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청작포과    지천우신  상

  神其保佑  ?無後艱  謹以  淸酌脯果  祗薦于伸  

  

 

축문해설?○○년○월 ○일 ○○이 감히 토지신께 고하나이다.

금일○○의 유택이 불리하여 여기에 옮기려 합니다.

신께서는 그를 보호하고 도우셔서 후환이 없게 하시옵소서.

삼가 맑은 술과 포와 과일로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드리오니 신께서는 흠향하옵소서.

?시작부분에서 顯考學生府君 까지는 (블러그 제목) 가정상식- 알기쉬운제례의 축문 쓰는 법을 참고 할 것. 

 

 

5. 이장 절차(끝난후)

 

이장이 끝난 墓 앞이나 화장을 해서 모신 납골당이나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

축문도 읽기를 권한다.

 

 유세차                                                        감소고우

 維歲次 ○○年 ○○月○○朔 ○○日  ○子○○  敢昭告于

  (고 학 생 부 군)       지 묘  신개유택  사필봉영

  (考學生府君)    之墓  新改幽宅  事畢封瑩

  복유존령  영안체백

  伏惟尊靈  永安體魄

 

?축문해설? ○○년○월○일 ○○은 감히 고하나이다.

                  묘를 새로 마련하여 봉분을 마쳤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존영께서는 영원이 체백이 편안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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